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헤어질 결심, 미스터리한

by 저슷흐킵고잉 2023. 8. 13.
반응형

헤어질 결심, 사랑할 결심

 

박찬욱 감독이 연출하고 배우 박해일과 탕웨이가 출연한 영화입니다. 보고나면 영화순위가 왜 높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영화는 '사랑'은 '헤어지는 순간'에 찾아온다는 역설을 은유적인 방법으로 조심스럽게 사랑의 깊이와 거리를 묘사합니다. 사랑을 다루는 영화임에도 서로의 입에서 사랑한다는 고백은 물론, 사랑이라는 단어조차 나오지 않습니다. 제목 역시 '사랑'이 아닌 '헤어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한 영화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 흔한 베드신조차 없고, 격정적인 사랑 하나 없습니다. 외설적이고 통속적으로 보일 수 있는 육체적인 관계 대신 두 주인공 사이에 정신적인 교감에 중점을 두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용의자와 경찰이라는 관계, 합법적이지 않은 불륜이라는 상황, 한국에 살지만 한국어에 서툰 외국인, 모두 사랑이라는 개념을 최대한 에둘러 표현하기 위해 고안한 설정이라고 합니다.

 

박찬욱 감독은 인터뷰에서 영화를 최대한 부드럽고, 미묘하게 표현하고 싶었다고 하셨습니다. 이 부분이 영화의 가장 큰 모티브가 되고, 주제의식이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헤어짐과 사랑이라는 역설은 부산에서 해준이 서래에게 이별을 말하는 장면에서 잘 드러납니다. 해준은 사건을 조작한 서래에게 실망하며 떠나지만, 그 순간에 서래는 해준을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해준에게는 사랑의 끝이었지만 서래에게는 사랑의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직업의 윤리보다 사랑을 택하며 헤어질 결심을 한 해준과 그 통보에서 사랑을 느낀 서래의 상황은 감독이 생각하는 사랑을 가장 부드럽고 미묘하게 표현하는 방법인 것입니다. 사실 저에겐 조금 어려웠습니다. 그 미묘한 부분이 말입니다.

 

영화는 같은 상황을 각각 다른 두 가지 방식으로 보여줍니다. 첫 번째는, 부산에서 해준의 시점입니다. 서래에 대한 멀어진 마음을 보여주려는 듯, 카메라는 멀찍이 두 사람의 행동을 담습니다. 집을 나서기 직전에는 해준의 얼굴만을 화면에 담는데, 이 때 서래의 감정은 온전히 배제하려는 듯, 서래의 얼굴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반대로 두 번째 장면은 서래의 표정을 클로즈업하여 보여줍니다. 떠나가는 해준을 등진 서래의 얼굴에 기쁨인지 슬픔인지 모를 작은 떨림이 있는데, 마지막 정면에 가서야 서래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녀에게 이별 통보는 '고백'이었고, 그 표정은 순수한 사랑의 흔적이었습니다. 그것이 영화가 감추고자 했던 미스터리한 해답이었습니다.

 

헤어질 결심은 서래에게는 사랑할 결심이었고, 해준의 사랑이 끝난 순간에 그녀의 사랑이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영화는 사랑과 상실이라는 두 모티브의 공존을 영화의 언어로 표현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해준과 서래의 관계는 극 중에 진행되는 사건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합니다. 구소산의 사건이 마무리되고, 서래가 누명을 벗은 순간부터 둘의 사이는 급속도로 가까워집니다.

 

 

미결 또는 종결

 

해준의 방 한편에 가득 찬 미결 사건들을 때 버리는 서래의 행동은 자기와의 관계를 완성하길 바라는 직접적인 표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완결된 사건들이 미결 사건임을 깨달았을 때 해준은 헤어질 결심을 하며 서래를 떠나고 두 사람의 관계도 끝이 납니다. 그 후 이포에서 다시 만난 둘은 그녀의 존재 이유만으로도 명백한 사건을 미결로 인지합니다.

 

제대로 완결 짓지 못한 채 끝나버린 그녀와의 관계에서 그는 더욱 불안해하며 그것이 다시 불면증으로 발전합니다. 해결된 사건을 미결로, 미결된 사건을 해결로 인식하는 해준의 이중적인 면은 두 사람의 관계를 끝까지 모호하게 만듭니다. 결국 미결이라는 테마는 단순히 사건의 진행상태가 아닌, 두 사람의 정서와 관계의 불확실성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셈입니다.

 

하여 미결은 영화 속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미결을 통해 서래의 행동도 이해할 수 있고, 이포에 왜 왔냐는 해준의 질문에 답으로 나는 당신의 미결 사건이 되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평소 해준은 벽에 미결 사건을 붙여놓고 집요하게 바라보고 머릿속에 각인시킵니다. 그러한 그를 잘 아는 서래는 결국 자신과 해준의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음을 깨달았고, 구소산 사건의 증거인 핸드폰을 해준에게 건넵니다.

 

해결된 사건으로 종결된 일들을 미결로 되돌리는 동시에, 두 사람의 관계도 미결로 되돌리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해준은 미결 사건을 절대 잊지 않고 곱씹는 사람이기에, 서래는 해준에게 미결 사건이 되어 영원히 그의 기억에 남길 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산과 바다, 그 의미

 

두 개의 살인 사건은 각각 산과 바다에서 발생했으며, 서래의 두 남편은 산과 바다를 의미합니다. 그와 동시에 해준은 산, 서래는 바다를 상징합니다. 해주는 구소산을 따라 오르며 사건에 대한 전말을 알아갔고, 호미산에서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고백합니다. 서래의 오랜 숙원사업이었던 조부모, 부모의 유골도 호미사에 뿌려집니다.

 

따라서 산은 사건과 두 사람의 관계를 완결로 마무리 짓는 곳입니다. 반대로 바다는 미결의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휴대폰을 바다에 던지라는 대사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것처럼, 바다는 사건의 중요한 단서를 던져 사건을 미결로 만드는 장소입니다. 이야기는 산에서 시작하여 바다에서 끝납니다. 해준은 산에서 일어난 미결 사건을 완결로 만들지만, 바다에서는 완결된 사건을 미결로 만드려 합니다. 

 

 

서래는 산에서 살인을 했고 바다에서 최후를 맞이합니다. 그녀가 버렸고, 꼭 버려야 했던 중요한 단서인 휴대폰은 모두 바다로 향합니다. 이처럼 영화의 이야기는 미결에서 완결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완결로 시작해 미결로 마무리됩니다.

 

반응형